신화책방

죽음 앞에 선 위인들의 마지막 하루와 나의 순간

교육신화 2009. 3. 31. 21:48

한 인간이 죽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

-M.V.카마스 지음  "위인들의 마지막 하루"중의 글귀-

 

죽음 앞에 선 위인들의 마지막 모습을 어떠했을까?란 생각보다는

죽음 앞에선 나의 모습을 어떨까?를 떠 올리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12여년전의 모습을 회상해보았다.

짧았지만 잠시 죽음의 문턱을 다가선 나의 지난 날을 생각하면서

죽음 앞에 잠시 기도 올린 나의 모습이 어땠는가 돌아보았다.

 

1996년 6월 17일, 서울대학병원 내과병동

참 신나게 살아온 날들을 뒤로 하면서

수술실을 향해 가기위해 환자이동용 침대에 누워

수술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술 이틀전 날, 일본에서 공부 중이던 남편이 갑작스런 소식에 한국으로 나오고

부산에 있던 당시 6살이던 쌍둥이 아들이 혹시나 마지막이 될 엄마 얼굴을 보기 위해

자기 덩치보다 더 큰 가방을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서울역으로 마중나간 난,

두 놈을 보는 순간 얼마나 의젓해했던지...그리고 어쩜 그렇게 사랑스러웠던지

-보통 그런 상황이면 엄마들이 보통 자식을 보는 순간 운다고 하는데

난 왜 그때 눈물보다 쌍둥이 아들이 그렇게 의젓하고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다 컸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참 많은 추억과 사랑을 나누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수술 전 저녁에 보호자 서약서를 쓰면서, 남편이 얼마나 울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보호자 서약서란 것이 환자의 가족들과 환자를 한번 더 죽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그렇게 울지는 않았을 것을....

 

수술 당일, 아침 첫 수술 타임으로 한국 최고의 권위자인 이효표교수의 집도로 수술이 예약되어 있었다.

마취과 의사가 와서 조금 있으면 의식이 흐려질테니 걱정하지 말고 수를 세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이제 정말 수술을 하는 가보다하는 생각과 동시에

만약 내가 남들이 말하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또는 수술 중 간혹 있다는 의료사고로,

또는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다시 이 세상을 보지 못한다면이란 생각을 하는 순간

내 머리에 휙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는 생각들, 생각들

 

-후회없이 살았다. 이렇게 짧게 살려고,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나누고 살았나 보다.

 

-미련없다. 몇년 더 산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더 있을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순간, 해야 될 순간, 최선을 다하고 산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쌍둥이들과 만나서 너무 행복했고, 쌍둥이들도 엄마가 혹시 없어도

그동안 나눈 사랑과 추억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자신감,

그리고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배려할 줄 아는 이 세상 최고의 아빠가 있으니

엄마 몫을 다 해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편안해져왔다-

 

마취 주사 마늘의 따금거림과 동시에 온 머리속이 횡하니 비는 듯한 순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 했다. 침대 바퀴가 구르는 소리가 멀어지면서

귓가에 들리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와 손을 잡는 사람의 힘마저 느끼지 못하고

나의 손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회복실로 옮겨진 난 하루동안 기분나쁜 복통과 메스꺼움을 달래느라고

휑한 머리와 텅빈 복통과의 이상한 조화는 기분 나쁘지만 내가 살아있는 증거로 느껴졌다.

 

가족들과 지인들이 회복 중인 내 옆에서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이다.~

정말 수술이 잘 되어 다행이다.~

이것도 너가 그동안 열심히 산 댓가야~

너가 전생에 지은 복이, 현세에 베푼 복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뭐라해도 내 귀에는 아무런 의미없는 소리로 들렸다.

난, 남들이 말하는 제2의 인생을 살게되었다는 기쁨과

이제는 정말 후회없는 삶을 살아야지라는 생각밖에~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신없이 10여년을 넘게 살았다.

정말 하고픈 일,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그리고 2009년 3월 5일 아들의 도서목록 중에 한권인 위인들의 마지막 하루를 잡았다.

책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면서

학기초 쏟아지는 업무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가

3월 14일 초등학교 동창모임 후유증으로

엄청난 감기몸살을 겪었다.

꼬박 10일간

그렇게 아프기는 처음이었다. 산통보다, 수술후 마취에서 깨어나는 회복통보다~~

정말 3일간은 이불을 친구삼아 거의 매시간을 수면장애증환자처럼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그 기간 중 눈을 뜬 순간 우연히 집어들고 읽어내려간 책

<위인들의 마지막 하루>3월 15일 일요일 오후,

엄습해온 감기몸살로 인해 약 10일간의 나의 시간은 "멍멍대해"

-멍한 것이 끝없이 펼쳐지는 고통의 바다를 헤매고 다닌 듯한 느낌의 시간과 공간들-

죽은 듯이, 자듯이 누운 10일간속에 간간이 깨어있을을 알게 해준 책,

잔잔한 고통, 가끔씩 몰아부치는 가슴통과 無思속에 부담없이 담담하게 읽어내려간 책,

 

죽음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어떻게 맞이하고 표현하느냐의 개인적 삶의 표출이 바로 그것이라 본다.

나의 사견으로는, 아니 나의 짧은 실제 경험으로는~

 

저자인 M.V카마스는

인격적으로 완성된 사람의 죽음은 용기있고 고요하고 평화롭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지만

사실 이 글에 등장하는 많은 위인들이 그렇지 못했다.

링컨이, 아돌프 히틀러가, 에디슨이,지그문트 프로이드가, 나폴레옹이 등등

그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고뇌와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평범한 범인들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죽음 앞에 당당함과 의연함을 잃지 않은 이도 있었다.

앤 볼린이, 이반 투르게네프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스와미 비베카난다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그랬다.

 

삶처럼 죽음도 하나의 기술이다.

위인이라고, 범인이라고 다른 것이 아니라

얼마나 인간닮게 자신있게, 그리고 후회없이 살다가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가 말한 죽음에 대한 메세지~

-모든 날은 태어나기에 좋다. 그리고 모든 날은 죽기에도 좋다.

 

내가, 당신이 언제 죽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느냐가 중요할 것 이다.

 

-2009년 3월 5일 시작하여 2009년 3월 31일 책을 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