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설레임

동서양 문화의 만남! 마카오의 화려함

교육신화 2009. 1. 6. 09:15
여행지
마카오
여행기간
2008년 12월 28일 일요일
비용
 
나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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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 스토리

드디어 영화에서 자주보던 도박의 도시 마카오 관광날이다.

호텔 2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페리로 1시간 가량 이동하여 마카오에 도착했다. 도착하여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고 중국속의 유럽풍을 그대로 재현해놓았다는 세나도광장을 찾았다.

마카오는 세계최대의 도박지이자 휴양지,무역항으로서 급부상한 중국의 작은 어촌으로 우리나라 여의도 면적의 3.5배로 세계유산이 11개나 있는 동서양 문화의 융합지로 인구 53만명, 1인당 인구 GNP가 동양 최대로 1996년 포르투칼 식민지령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특히 이곳은 포르투칼의 지배를 받았던 곳으로 곳곳에 포르투칼의 문화가 산재되어 있는데 특히 가장 남유럽풍인 세나도광장의 길거리의 돌들은 포르투칼에서 직접 공수해서 깐돌들이라 하니 그당시의 포르투칼의 위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이 도교와 불교가 혼재된 관음당으로 관음당 내에 있는 연리지 나무와 미국의 중국 진출을 가능하게 한 회담지가 바로 이곳 관음당 안의 석좌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곳의 관음상은 성모마리아의 모습과 비슷한 것이 이색적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세나도광장과 연결된 성바울성당이다. 상바올성당의 건물 자체가 성경의 스토리이며 천주교의 역사였다. 세번의 화재로 거의 뼈대만 남아있는 성바올성당을 재건축하지 않는 이유가 세번째 화재가 일어났을 때, 마카오의 장정 대부분이 바다로 떠났는데 당시 큰 폭풍우가 몰아쳐 모두 사지에서 헤매고 있을 때, 성바올성당의 화재로 인해 그 불길로 어부들이 표적을 삼아 무사히 귀항하였다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해 천주님의 성은에 대한 감사와 기념의 표시로 그대로 두게 되었다고 한다.

포르투칼의 지배를 받았던 마카오는 자연스럽게 천주교가 성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조선에서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을 포함하여 청소년 3명을 선발하여 프랑스 신부와 함께 천주교입문을 위해 1863년 마카오로 보냈다. 함께 간 최방제 신학생은 죽어서 성 미카엘 묘지에 묻혀 계시고, 최양업 과 김대건은 신부공부를 무사히 마치고 조선으로 돌아와 포교활동을 하다 김대건은 순교를 당한다. 뿐만아니라 중화민국의 건국아버지인 손문 역시 이곳에서 공부를 하면서 건국의 꿈을 키웠다고 하니 마카오는 중국에 있어 분명히 의미있는 곳이며 유럽과 동양을 잇는 중요한 문화발상지임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2006년 베네치안호텔이 문을 열면서 세계최대의 카지노의 서열이 바뀌었다. 라스베가스의 카지노들이 부동의 1위 자리를 마카오의 베네치안에게 빼겼다 한다. 

베네치안호텔은 홍콩 제일의 부자인 83세의스탠리호가 축구장 8개의 크기로 한번에 24000명이 배팅을 즐길 수 있도록, 10조원을 들여 자신의 신혼여행지인 이태리의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곳으로 호텔안에 흐르는 운하의 곤도라는 이태리풍을 그대로 표현하였고 세계 유수의 명품관을 입점시켜 세계의 갑부들이 도박과 쇼핑으로 돈을 풀게하고 있다.  유의해야 할 점은 카지노 출입시 카메라 촬영(출입자의 신분 노출을 방지함)과 민소매, 반바지, 슬리퍼 차림은 노! 뿐만아니라 그 옆에 위치한 Wynn호텔의 분수 야경쇼과 나무쇼(일명 럭키트리쇼)는 압권이었다. 아쉬운 점은 338m의 마카오타워에서 내려다 보는 마카오의 불야성은 흐린 날씨로 인해 볼 수 없었던 점이다.

마카오에서의 속설 중 하나가 카지노를 하러 오기 전에 관음당을 들러 대형 향의 향재를 맞으며 대박을 터트린다는 속설로 인해 반드시 관음당을 드런단다. 혹은 하루종일 재를 맞기 위해 고나음당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자주 일어나지도 않는단다. 아, 근데 울 맘이 유일하게 대형 향(마카오는 어촌이다 보니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풍속으로 1년 내내 타오르는 원뿔모양의 대형 향이 관음당 이곳저곳에 주렁주렁 매달여 있음)의 재를 맞으셨다. 그 덕에 할 수 없이 10달러 칩 교환하여 영문도 모른채 맘은 카지노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정말 인가보다. 다른 일행들은 더 많은 돈으로 10~30분 만에 바닥을 쳤는데 맘은 달랑 10달러로 한시간 이상을 즐기셨다. 물론 대박은 꿈이었다. 마카오 그랜드뷰호텔에서 여정을 풀며 낼 홍콩으로 귀향할 때는 올 때보다는 좀 나은 페리를 탈 수 있기를 고대했다.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 오전에 본 개화장실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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