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결심을 현실화시키는 마력을 가진 영화 세븐 파운즈!!
벤 토마스(윌 스미스)에게 세븐 파운즈가 의미하는 것은 외면상으로는 자기 포기와 자해로 해석되지만 진정으로 최후의 선택은 자기 희생을 의미하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난 왠지 영화과 그립다. 아니 꼭 보고 싶어진다.
어제 영화관에서 천사와 악마를 본 관계로 별 관심있는 영화가 없어서
퇴근하면서 구포장에 들러
놀토가 낀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기숙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큰알을 위해 다양한 쌈거리와 맘이 좋아하는 간장 깻잎지, 삼겹살, 그리고 등등...
집에 오니 작은 알이 오늘 사설학원 모의고사 치른 날이라고 일찍 집에 와서
컴 앞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하여 간만에 저녁을 집에서 먹는 작알을 위해
파겆절이에 삼겹살, 그리고 맘을 위해 호박잎을 살짝 찐 호박잎쌈등...
저녁 상이 간만에 푸짐한 저녁이었다.
다른 날에 비해 이른 저녁 상을 물리고 단골 비디오카페에 가서
볼 만한 것이 없나 어슬렁거렸다.
내가 찾는 많은 프로들은 없었다.
어제 만난 톰행크스로 인해 톰행크스가 주연한 -가장 열연한 것으로 평가되는- 빅을,
역시 없었다. 내가 간혹 찾는 것들은 대체로 과거로의 여행이나,
혹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작들이 되어서 그런지 100%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윌스미스 주연의 세븐 파운즈!
커버 표지 모델로 등장한 윌스미스의 모습이 왠지 고뇌와 우수에 찬 실패한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오기에 평소 윌 스미스의 전사적이고 탄력적인 액션파이팅을 볼 수 없다는 의미에서 뭔가 다를 것 같다는 예감으로 선택한 비오는 날의 영화!!
완전 성공, 아니 내인생의 대박 영화이다.
어제는 대법원이 인간의 존엄사를 인정한 날이기도 하다.
평소 장기 기증에 대한 욕구가 강한 나이기에
사후 장기기증은 할 것이다는 관념적인 생각만 해오던 나에게
영화가 끝나고 바로 나의 메모장에 남긴 나의 소망~
"나의 의지와 무관한 어떠한 치료나 고통을 거부한다~
그리고 나의 심장이 멈추기 전에 나의 장기를 모두 기증한다"
나의 장기기증을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영화,
윌스미스의 세븐 파운즈~
그의 순간의 실수-휴대폰의 문자확인위한 그 순간-로 사랑하는 이와
알지 못하는 6명의 생명을 자신이 빼앗았다고 자책하면서
그의 인생은 자신의 인생과 먼저 간 7명의 인생을 대신할 대리인을 찾으러 나서면서
팀이란 자신을 던져버리고
병상에 있는 동생 벤 토마스로 페이스오브되는 순간,
자신에 대한 자학과 아낌없이 줄 모든 계획이 착착 진행된다.
사랑하는 동생 벤(팀 자신이 변모할 친동생)이 폐암에 걸리자 자신의 폐엽을 주고,
아동보호국에 근무하는 홀리에게는 자신의 간 일부를,
홀리에게 추천받은 확대받는 여인과 그 두 자녀에게 말리부해안에 있는 자신의 대저택을 남기고,
매튜병원 소아암병동에서 투병중인 이름모를 아이에게 마취도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골수를,
그리고 나중에 자신의 심장을 갖게 되는
심장병 환자로 삶의 오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에밀리를 만나면서
자신의 희생프로젝트가 잠시 머뭇하는 듯하지만,
자신의 행적을 추적해온 동생 진짜 벤의 등장으로
사랑하는 에밀리와 최후의 밤을 보내고......
에밀리의 주치의를 만나 에밀리의 재생 가능성(3~5%)을 확인한 다음
울부짖으며 빗속을 달려 자신이 장기간 머물고 있던 모텔로 돌아간다.
친구이자 대리인인 댄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세븐 파운즈프로젝트-장기이식 가능 자살 프로젝트-의 실행을 알린 다음,
911에 전화를 해서 자신의 자살을 알린 후,
마지막 기록을 남긴 후 -자신의 장기를 기증받을 에밀리(심장)와 에르자(눈)에 대한 내용-
욕조에 얼음과 해파리를 넣어서
자신을 죽게하나 냉동효과를 가져와 장기이식을 가능하게 하는 치밀함을 실행한다.
그리고 곧 이은 장기이식수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에르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피아노 공연장에 나타난 건강한 모습의 에밀리와 상봉한다.
그들은 만난 적도 없지만 서로를 알아보고 애정의 포옹을 한다.
그들은 세븐 파운즈의 수여자이기 이전에,
벤이란 숭고한 인간의 죄의식을 통해 새로 태어난 사람들이므로~
서로의 아픔을, 그리고 그들을 사랑한 벤을 매개로 하여~~
처음 이 영화는 무료하게 진행되었다.
평소 내가 아닌 윌스미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기력하고 인생에 패배하여 자책하며 의미없는 행동을 하는 한 남자의 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점점 영화에 빠지면서
역시 윌스미스의 몰입연기, 그의 휑한 몰골과 자책감 물씬 묻어나는 연기~
끝에 에밀라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 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음에 포효하며
빗속을 달리는 그를 맞닥뜨린 순간,
나는 바로 나의 메모장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나의 기록~
세븐 파운즈는 자의와는 무관하게 순간의 실수로 7명의 삶을 빼앗아간
한 영혼이 자신의 죄책감으로 또 다른 삶에 희망을 준 영화였다.
자신을 희생하고, 또 다른 삶의 빛이 된 세븐 파운즈의 벤 토마스!
그는 나에게 아름다운 삶의 퇴장을 권유하고 결정한 멋진 사람이다.
-이상 신화의 세븐 파운즈에 대한 잡스런 생각-
[미디어들의 PREVIEW] <세븐 파운즈>
STAFF 감독ㆍ가브리엘 무치노 | 촬영ㆍ필립 르 소드 | 미술ㆍJ. 마이클 리버 | 의상ㆍ샤렌 데이비스
CAST 벤 토마스ㆍ윌 스미스 | 에밀리ㆍ로자리오 도슨
DETAIL 러닝타임ㆍ123분 | 관람등급ㆍ15세 관람가
WHAT's THE STORY?
말리부 해안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고 있는 벤 토마스는 언제부턴가 낡은 자동차와 허름한 옷차림으로 다닌다.
PREVIEW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앞을 못 보는 점원을 향해 무턱대고 윽박지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는 과분한 선행을 베푼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듯 흔적을 남기려 애쓴다. 바로 국세청 직원인 벤 토마스다.
그의 고민은 치열했고 결단은 과감했다. 그리고 실천은 감동적이었다. 영화 <세븐 파운즈>는 한 개인이 자신의 과오를 용서받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한다는 내용의 드라마다. 영화는 벤 토마스의 행적을 따라가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 [희생의 여정]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세븐 파운즈>가 관객의 참여를 요구하는 방식은 다분히 미스터리적이다. 궁금증을 유도하는 이 영화의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은 흐름과는 무관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단편들을 뿌려놓고 관객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호흡은 불규칙적이고 순서는 뒤죽박죽이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하고 시간은 모호하다.
관객들로서는 {왜? 벤 토마스는 저토록 사람들에게 헌신적이면서 동시에 악랄한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암시와 복선으로 혼합된 구성과 작품의 후반부까지 맥락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감독은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또렷한 방점을 찍는다. 비로소 그 무질서했던 이야기의 단편들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 작품에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흐름은 없지만, 벤 토마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조각들로 완성된 하나의 그림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을 찾아서>를 통해 뭉클한 감동을 길어 올린 가브리엘 무치노 감독과 윌 스미스 콤비.
<세븐 파운즈>가 주목하는 키워드는 죄의식과 희생이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알아챘겠지만, 영화의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의 상황과 얼핏 겹쳐진다. <세븐 파운즈>는 벤 토마스의 죄의식이 어떤 식의 희생으로 변하는지, 그 심리적 여정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영화다.
모든 것을 내걸어야 하는 빚 <세븐 파운즈>

synop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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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 파운즈>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1막 3장에서 따왔다. 거부 샤일록이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충동적인 성격을 이용하여 내거는 거래 말이다. 샤일록은 바사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는 대신 보증인으로 나선 친구 안토니오에게 “너의 싱싱한 살 1파운드를 담보로 삼자”고 한다. 그 의도를 의심하는 바사니오에게 샤일록은 ‘신의 요구대로 불평하지 않고 아들 이삭을 속죄물로 바치려 했던 아브라함’을 들먹거리며 외친다. “인간의 몸에서 떼어난 1파운드의 살은 양고기나 쇠고기나 염소고기처럼 가치있거나 이롭지도 않다네. 나는 단지 그의 호의를 사들임으로써 이 우정을 연장시키려는 것뿐이네.” 우정과 선의를 위해 목숨을 내거는 이 위험한 거래, 겉으로는 공정한 듯 보이지만 실상 모든 것을 내걸어야 하는 빚의 개념이야말로 <베니스의 상인>과 <세븐 파운즈>의 토대를 이루는 주제의식이다.
죄책감과 속죄에 관한 영화, 강박적이리만치 윤리적인 남자의 행적을 뒤쫓는 영화.
실제로 <세븐 파운즈>의 결말을 보기 전까지 수수께끼 같은 주인공 벤의 동기를 짐작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말없이 어리둥절하게 벤의 표정과 행동을 눈으로 더듬으며 짐작할 따름이다.
상냥함의 가면을 어색하게 유지하던 벤은 혼자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둡고 난폭하며 자기 파괴적인 충동에 시달리는 진짜 모습을 내보인다. 이야기는 점점 모호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폭탄처럼 등장하는 과거, 이삭과 아브라함,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그것처럼 선명해지는 벤의 기억, 영화상으로는 ‘반전’에 해당하는 그 부분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눈물 쏟는 감동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던 기억에 벤이 얼마만큼 시달려왔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약점으로 보인다.
대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약 성경의 엄중한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물리적인 고통이 아프게 다가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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