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2년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그 혼돈과 광기의 시대 임진왜란의 기운이 조선의 숨통을 조여 오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던 선조 25년.
황정학(황정민 분), 이몽학(차승원 분)은 평등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관군을 대신해 왜구와 싸우지만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을 반란이 시작된다! 대동계의 새로운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빠진 세상을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우고 ....








정여립..
이몽학...
조선 선조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
그들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살펴보면
정여립(鄭汝立, 1546년 ~ 1589년)은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사상가, 개혁가, 공화주의자이다. 자는 인백(仁伯), 호는 죽도(竹島),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이 영화의 중심 배경이 되는 <정여립의 죽음과 생애, 사상>에 대해간략하게 살펴보면,
1567년( 명종 22년) 진사가 되고, 1570년( 선조 2년) 문과에 급제했다. 1583년 예조좌랑을 거쳐 이듬해 수찬에 올랐다. 처음에는 서인으로서 이이와 성혼(成渾)의 후원을 받았으나, 이이가 죽은 뒤 당시 집권세력인 동인 편에 서면서 이이·성혼· 박순(朴淳)을 비판했다. 이에 따라 서인의 집중적인 비판의 표적이 되고 선조의 눈밖에 나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이후 진안 죽도(竹島)에 서실(書室)을 짓고 사회(射會)를 열어 강론을 펴는 등 활동을 전개하면서 인근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대동계를 조직했다. 대동계는 신분에 제약을 두지 않고 가입을 허가했으며 보름마다 1번씩 무술훈련을 하는 등 호남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해갔다. 1587년에는 전주부윤 남언경(南彦經)의 요청으로 대동계원을 이끌고 손죽도(損竹島)에 침범한 왜구를 물리치기도 했다.
그뒤 황해도 안악의 변숭복(邊崇福)·박연령(朴延齡), 해주(海州)의 지함두(池涵斗), 운봉(雲峰)의 승려 의연(義衍) 등과 왕래하면서 대동계의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1589년 안악군수 이축(李軸),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 등의 고변(告變)이 있은 후 아들 옥남(玉男)과 함께 죽도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사망 이후 그의 집은 허물어지고 파해쳐져 연못으로 만들어졌다.
죽음에 있어서는 자살설과 타살설이 분분하다.
정치적 결사의 성격을 갖는 대동계(大同契)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모반을 꾀한다는 서인의 탄핵을 받고 체포되기 직전 자결한 것으로 전해지나, 남하정의 동소만록《桐巢謾錄》에 따르면 “정여립이 진안 죽도로 단풍 구경을 갔는데 선전관과 진안현감이 죽인 후 자결한 것으로 꾸몄다”고 기록되어 있다. 두 기록 중 어떤 게 사실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그가 대동계를 이용하여 혁명을 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이에 대해서는 조작설과 역모설의 양설이 있다. 일설에는 송익필이 그의 부친때 역모사건의 고변으로 면천되어 당상관까지 오른 것을 기억하고, 다시 천민으로 떨어진 자신의 신분을 면천하기 위해 정여립의 대동계를 역모사건으로 엮었다는 설도 있다. 송익필은 특히나 서인들의 정신적인 스승들이었던 이이, 성혼의 절친한 지기였고 학문적으로 많은 교류를 하였다. 게다가 동인이면서 이이의 인정을 받으며 이이의 추천으로 관직에 나섰던 그가 이이의 사후에 이이를 공격한 것 때문에 서인들의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였다.
정여립의 사건이 정철(鄭澈) 등 서인의 주도로 사건이 조사되면서 옥사가 점점 커져 이발(李潑)· 백유양(白惟讓)· 최영경(崔永慶)등 동인의 주요인물이 대거 연루되어 제거되었으며 이때 숙청된 인사는 1,000여 명에 달했다. 이를 기축옥사라 하며, 이 사건으로 동인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3년 후에 발발한 임진왜란조차 기축옥사의 황폐가 부른 재앙이라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사태는 참혹했다. 정여립의 대동계의 주요 활동 근거지가 전라도 지방이어서 전라도 유림사회가 초토화 되었다. 호남의 유림사회에서도 이 사건 이후로 관직에 미련을 버리고 은둔하는 경향들이 나타났고, 이후 조정에서도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이 활약할 때까지 전라도를 반역향이라고 하여 호남인들의 등용도 제한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에는 대동계라는 명칭으로 등장하는 그의 중심사상은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과 같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사상을 표방했다.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를 지탱하고 있던 주자학적 가치관과는 적지않은 차이를 갖고 있었다.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라는 주장과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은 성현(聖賢)의 통론(通論)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이를 보여준다. 또한 백성이 임금보다 중요하므로(民重君輕) 왕위계승은 혈통보다는 자격여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였고, 요(堯)· 순(舜)· 우(禹)로 이어지는 왕위의 선양(禪讓)을 이상적인 모범으로 간주했다. 이는 봉건왕조의 기본적 가치관의 하나인 군신강상론(君臣綱常論)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에 견주어 정여립을 ' 동양 최초의 공화주의자'라고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단재 신채호는 정여립의 공화주의적 사상을 두고 “동양의 위인”이라 칭송하였고, 역사학자 이이화는 정여립을“전도된 가치를 바로잡고 불평등과 차별의 세상을 뜯어고치고자 온몸으로 현실에 부딪친 진보적 지식인이었고, 선진적 사상가였으며, 민중에 토대를 둔 개혁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몽학(李夢鶴, ? ~ 1596년)은 조선 선조 때, 이몽학의 난을 일으켰다.
이몽학은 왕족의 서얼 출신으로 홍산현 구룡 사람이다. 아버지에게 쫓겨나 충청·전라도 지방을 돌아다녔다. 임진왜란 때 한현의 부하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반란 계획을 꾸민 다음, 의병을 모은다는 명목으로 동갑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장정들을 모집하였다. 1596년 충청도 홍산에서 ' 이몽학의 난'으로 불리는 반난을 일으켜 한때는 홍산·청양·대흥 등을 차례로 함락시켜 홍주(지금의 홍성)까지 돌입했으나, 반란군 중에서 관군에 붙은 자가 많아져서 전세가 불리해졌다. 그러자 그의 부하 김경창· 임억명 등이 이몽학의 목을 베어 항복하였다.
구르믈 버서난 달이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인 정여립과 이몽학(차승원), 그리고 황처사(황정민)는 모두 실존인물이다.
그들이 살아 있다해도 이들만큼 실감나게 했을가 싶을 정도로 열연을 한 배우 차승원과 황정민....
정말 봉사인 것 처럼,
정말 시대의 희생양인듯 분노하는 눈길과 포효하는 칼날...
누가 이처럼 연기를 맛깔나게 할 수 있을까?
차승원이란 배우의 첫 등장때 많은 관련인들과 관객들은 그냥 그의 준수한 외모로 한번 반짝할 배우일거라고 짐작한 배우 차승원이, 감칠맛 나는 푼수 연기며, 시대극과 역사극에 상황에 적절한 카리스마 연기 등. 현대물과 시대물을 넘나들며 그의 역량과 끼를 만끽하는 그는 배우로서 외모와 끼를 함께 지닌 축복받은 연기자 임에 분명하다.
뿐만아니라 황정민이란 배우는 덥수룩한 외모와 사람좋은 이웃 집 아저씨같은 분위기에 빼어난 연기력으로 연기파 배우로 애시당초 인정을 받은 연기자이다. 그런데 그가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맹인 역할을 맹인보다 더 천연덕스럽게 하고, 맛깔스런 사투리와 어눌한 행동 속에 숨어 있는 시대를 찌르는 해학에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역시 황정민이다.
기녀 백지(한지혜)와 이몽학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서얼출신의 견자(백성현)가 마치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처럼 묘사된 것이 다소 의 이 영화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소재가 그당시의 시대상을 부분적으로 잘표현한 세트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기녀들의 절개와 서자들의 분노와 사회적 배경(이몽학의 난과 대동계, 임진왜란 발발 등)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몽학의 왕권에 대한 도전은 죽음으로,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속에 파묻히지만 그 당시 동인과 서인의 당쟁, 당파로 인해 결국 피해를 본 백성들의 아픔(서자들의 한 포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미디어 리뷰를 옮기다>
서로의 욕망에 칼을 겨눈 세 남자 (오락성 7 작품성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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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기운이 감도는 조선은 그보다 더 큰 문제인 당파싸움으로 혼란스럽다. 왜구를 막고자 만들어진 ‘대동계’도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해체되고 만다. ‘대동계’의 일원이었던 이몽학(차승원)은 썩어빠진 정치를 뒤엎고자 다시 ‘대동계’를 규합해 조정을 압박한다. 한 때 ‘대동계’에 몸담았던 맹인 무사 황정학(황정민)은 이러한 이몽학의 반란에 제동을 건다. 그리고 여기에 이몽학에 의해 죽임을 당한 세도가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가 등장한다. 견자는 이몽학을 향한 복수의 칼을 가는 동시에 그의 여자인 백지(한지혜)에게 연정을 품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난을 일으킨 이몽학은 끝내 한양까지 입성하지만, 그곳에선 뜻밖의 결과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박흥용 화백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한신균의 서자인 견자가 주인공이다. 신분 차별에 대한 설움을 갖고 있던 견자가 험한 세상 속에서 성장해가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원작에서는 황정학, 이몽학의 대립 관계가 그렇게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견자를 화자로 활용하면서도 세 남자의 관계를 확장해 대치시킨다. 왜구로부터 조선을 지키고자 했던 ‘대동계’의 일원인 황정학과 이몽학은 점차 다른 욕망을 드러내며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이몽학에 대한 복수만을 꿈꾸며 살아온 견자 역시 조금씩 성장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영화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황정학과 이몽학의 대립 관계다. 두 사람은 왜구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대동계’를 통해 뜻을 모았지만, 점차 엇갈린 노선을 걷게 된다. 맹인 무사 황정학은 끝까지 나라의 안위를 우선하는 ‘대동계’를 주장하지만, 이몽학은 썩어빠진 정치에 분개하며 나라를 뒤엎고 새로운 왕이 되려는 야망을 키운다. 아쉬운 점은 두 사람의 대의가 부딪히는 미묘한 지점이 없다는 거다. 황정학은 ‘구국’이라는 그럴싸한 대의라도 갖고 있지만, 이몽학은 왕이 되겠다는 개인적인 야망만 부각되면서 결국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로 점철된다. 또한 이몽학에 대한 복수를 키우는 견자나 견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이몽학을 사랑하는 백지도 캐릭터로서 명확한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의 사극답게 당시의 정치, 사회에 대한 풍자는 현대의 그것들과 중첩되며 야릇한 쾌감을 준다. 사소한 것까지도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어 으르렁거리는 모습은 현대의 정치판과 비교돼 웃음을 주고, 신분 차별에 대한 분노와 민중 봉기에 대한 긴장은 나름의 카타르시스도 전한다. 또, 김창완부터 송영창, 정규수, 신정근, 류승룡, 김보연, 김상호 등 여러 연기파 조연들을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인물들에 시선이 가는 영화다. 해학적인 맹인 무사를 연기한 황정민의 연기가 든든하게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지만, 대의에서 시작해 단순한 악인으로 돌아선 차승원이나 미숙한 소년이라는 설정으로 소리만 질러대는 백성현은 캐릭터적인 매력이 없다. 또한 여성 캐릭터를 잘 그려내지 못하는 이준익 감독답게 한지혜의 포지션도 애매하다. 하지만 고속촬영에서도 어설픈 티가 나지 않는 검술 장면이나 풍자적으로 그려진 정치적 상황, 웃음을 자아내는 황정민의 애드리브는 영화의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이준익 스타일의 마당극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박흥용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딱 이준익이 꿈꿀 작품이다.
여기에는 이준익이 <황산벌> <왕의 남자>를 통해 관객에게 건네온 이야기가 모조리 들어 있다. 정치는 부정하고 세상은 부조리하다. 민초는 스스로의 힘으로 계급사회의 모순을 돌파하는 꿈을 꾼다. 꿈은 꿈일 뿐이다. 결국 이준익의(그리고 박흥용의) 남자들은 장엄하게 실패한다.
무대는 임진왜란이 코앞에 닥친 1592년.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과 야심가 이몽학(차승원)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대동계’를 만들어 왜구와 싸우려 한다. 그러나 조정은 이들을 역모로 몰아세운 뒤 대동계를 해체시킨다. 대동계의 수장이 된 이몽학은 썩어버린 조정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세도가 한신균 일가를 학살하며 역적을 도모한다. 황정학은 이몽학의 헛된 욕망을 멈춰세우기 위해 이몽학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를 훈련시키며 칼을 다시 빼든다. 마침내 일본군이 한양으로 쳐들어오고, 이몽학 역시 한양으로 입성하며, 황정학은 이몽학을 쫓는다.
이준익 감독은 견자의 1인 성장극이라고도 부를 법한 원작을 여러 캐릭터의 관계가 얽히고설킨 이준익 스타일의 마당극으로 만들었다. 견자, 황정학, 이봉학은 균등한 비중을 넘겨받았고, 여기에 무책임한 왕 선조(김창완), 이몽학의 연인인 백지(한지혜)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이 제각각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황산벌>과 <왕의 남자>의 결정적인 장점이었던 다시점의 마당극 스타일이 <구르믈 버서난 달에서>는 결정적인 단점으로 돌변한다. 일단, 인물이 지나치게 많고, 각각의 인물이 짊어진 풍자의 업보도 너무 크다. 진정한 이야기의 화자이자 성장담의 주인공이어야 할 견자는 그 사이에서 홀연히 휘발된다. 황정민, 차승원과 삼각대를 지탱해야 할 백성현의 연기가 지나치게 겉도는 탓이기도 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언제나 허무주의적이었던 이준익의 사극 중에서도 가장 허무주의적인 영화다. 물론 박흥용의 원작 역시 아나키즘에 대한 불꽃 같은 시였다. 그러나 이준익은 박흥용의 아나키즘을 밀어붙인 뒤 거의 완벽한 정치적 냉소로 한탄한다. 영화적 허무주의는 종종 아름답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감독의 철학이 캐릭터들의 생생한 매력을 거세하는 건 지적하고 넘어갈 만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피가 아니라 신념으로 몸을 채운 인형극처럼 무디고 냉랭하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미학적 촌스러움을 지적받아온 이준익이 좀더 세련된 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날세운 영화다. 처음으로 이준익과 작업한 정정훈 촬영감독(<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은 확실히 몇번의 검술 액션 장면에서 근사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박찬욱과 함께 웰메이드 시대를 열어젖힌 정정훈의 능력으로도 전반적으로 정리가 덜된 프로덕션의 구멍을 메우긴 힘에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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